남자와 여자 둘 다 사랑해, ‘바이섹슈얼 시크’ 현상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양성애자 고백이 시작된 걸까요? 지난봄 방송된 채널 S 예능프로그램 ‘진격의 언니들’에 출연했던 걸그룹 와썹 멤버 출신 지애는 “저는 여자와 남자를 모두 사랑한다”라며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본인은 남자 여러 명 만났지만 이게 사랑이 맞나 생각이 든다며, “이미 SNS에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의 존재를 커밍아웃을 했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죠. 게다가 남성과 여성과 각각 결혼을 한, 희대의 사기꾼 정청조의 등장까지!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바이섹슈얼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양성애’에 해당합니다. 또 양성애자는 남성, 여성 모두에게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매력을 동시에 느끼거나 둘 중의 하나를 상황에 따라 느끼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20세기 초반에는 동성애보다 양성애가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에는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 크리스틴 스튜어트, 앰버 허드 등 톱 스타들이 스스로 바이섹슈얼 커밍아웃을 해서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는데요. 최근 양성애는 미국과 유럽 등 셀럽들의 공공연한 고백으로 세련된 성 정체성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현상 때문에, 양성애자가 아닌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양성애자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멋지다고 하는 일종의 문화 트렌드를 지칭하는 ‘바이섹슈얼 시크(Bisexual chic)’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습니다. 사실 이 용어 자체의 기원은 1970년대 히피 운동이 끝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글램 록과 디스코가 유행하던 시대, 당시 활동하던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및 패티 스미드 같은 뮤지션 사이에선 양성애를 추종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1980년 <타임>매거진은 데이비드 보위와 그 페르소나였던 지기 스타더스트를 일컬어 ’오렌지 머리의 세련된 양성애자 창립자”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남성) 연인을 위해 싸우는 남녀의 삼각 로맨스를 그린, 뮤지컬 영화 <카바레>나 <록키호러쇼>,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도 바이섹슈얼 열풍이 한창때 히트한 작품들! 또 바이섹슈얼 시크는 종종 유명인들이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포함합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마돈나가 MTV 어워드에서 공개 키스한 것도 양성애자의 시크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였죠. 그리고 ‘바이섹슈얼 시크‘ 트렌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더 흔합니다. 물론 이 중에는 진짜 양성애자도 있지만요. 

점점 더 사람들의 성적 취향은 다양해지고 유연해지면서 양성애는 더 이상 단순 ’유행‘도, ‘세련’도,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바이섹슈얼 시크의 유행으로 양성애가 가시화되고 일부 수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성애자는 여전히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어쩌면 양성애자가 시크하다는 생각도 진짜 양성애자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마냥 반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가짜 양성애‘가 실제 양성애자에게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진정한 성적 취향이 아니라 ~척만 한다는 오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양성애자는 과연 연애라는 시스템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을까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양성애자라고 밝혔던 여성은 “전에 만났던 애인이 저한테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안 되냐. 남자한테 여지 주려고 양성애자라고 하냐“라고 화를 내더라며 고충을 토로합니다. 남녀 구분하지 않고 마음이 가고 사람이 좋으면 머리가 길든 짧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게 양성애자의 성적 지향성인데 남들 눈에는, 특히 성소수자 사이에서도 양성애자는 ‘언제든지 남자랑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고, 여자와는 놀기만 하고 결혼은 남자랑 한다’고 치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양성애자들이 매우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남성과 여성 모두와 성관계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그래서 이성애자나 성소수자 그룹 어디서나 배척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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